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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영화&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 (聲の形. A Silent Voice.)


 5월 초에 혼자 영화관 갔다가 영화 광고 중에 목소리의 형태가 개봉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때 9일날 개봉한다고 했었던가? 처음 정보를 접한게 5월 3일이었으니까. 이제서야 보게 되는 이유는 첫날 개봉하자 마자 보러 가겠다고 해 놓고 늦잠자고, 토요일날 보러간다고 결심해놓고 또 자버려서...


 경험에 따르면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는것은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게 2D, 3D 상관없이 말이다. 물론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취향이 충분히 반영된 것이니 당연한 것이다. 물론 이 긍정적인 결과라는것은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펙트가 화려했다던가, 소재가 신선했다던가, 이번에 보았던 목소리의 형태 (원제: 聲の形)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극장판 애니의 주인공 이시다 쇼야는 초등학교 시절 귀가 들리지 않아 말을 못하는 니시미야 쇼코를 괴롭혔고 쇼코는 버티지 못하고 다시 전학을 가버린다. 그로 인해 왕따 가해자라는 낙인과 함께 초,중학교를 혼자 지내게 된다. 고등학교에 올라서도 누구와도 교류를 하지 않는 쇼야는 자살을 결심하고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니시미야를 만나러 간다. 이후 쇼코와 쇼야가 만나는 과정에서 여러 사건이 발생하고 이전부터 붕괴하기 직전인 쇼코가 뛰어내려 자살하려는 것을 쇼야가 막지만 반동으로 대신 떨어지게 되고...


 스포를 많이 하지 않는 선에서 스토리는 저렇다. 사실 원작을 읽었다면 위의 줄거리는 매우 요약된 것이고 잘린 부분도 있지만, 나는 원작을 읽지 않았다. 여유가 되면 전권 구입할 생각이다. 여튼, 스토리를 더 줄이자면 왕따 가해자의 갱생 스토리 라고 할 수 있겠다. 나 어릴때는 왕따라는게 그렇게 많이 있었던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한다. 평균과 조금 다른 친구가 있었다면 그로인해 약간의 놀림거리는 되었지만,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같이 노는것에는 별 지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라기 보다는 2010년도 근처로 해서 우리나라에도 왕따 사건이 굉장히 화두에 오른적이 있었던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이로인해 티아라가 외국활동에 주력하게 되지 않았나?


 그렇게 따지니 이 영화는 왕따 가해자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미화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열린 결말에 과거 자신이 괴롭혔던 아이들과 원만하게 지내게 된다는 내용 전개나. 물론 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사람도 몇몇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의 얼굴에 붙은 X가 떨어져 나가면서 애니메이션은 끝이 나는데 이 X라는게 주인공이 마음을 닫고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붙는 일종의 스티커 같은지라 마지막의 연출은 주인공은 주변 인물에 대해 닫힌 마음을 열게 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왕따의 책임이 꼭 쇼야의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능한 담임부터 친한 친구들로부터의 뒤통수. 주변 사람들이 쇼코와 같은 친구가 있을때 어떻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도 조언조차 없었고, 거기에 주인공은 눈치도 없다. 초등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했을때 중학교 고등학교의 생활이 완전히 삭제되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약간 입맛이 씁쓸해 지는게, 이전에 남들에게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로 남을 괴롭혔으면 어쩌나하는 의문이 든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쇼야는 자신이 한 행동의 댓가를 받았기에 피해자를 기억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학창 시절을 보내는데 있어 주변 학우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나쁘다고 할 수 없었고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는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이다. 그렇기에 문득, 나는 학창 시절에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금까지 흘러왔다면? 이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더라. 괜한 죄의식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왔다.


 블로그에 애니메이션 항목에는 글을 많이 쓰지 않는데 이번 만큼은 많이 쓰게 된다. 그만큼 애니를 보고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원작 만화를 전권 구입해서 반드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