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읽을거리
군가산점
Aradreial
2011. 11. 20. 23:30
군인은 최전방의 철책선이나 군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내 초고층빌딩 옥상에도 젊은 군인들이 있다. 저공 침투하는 적기들로부터 주요시설물을 방호하는 ‘빌딩 GOP’(General OutPost)에 근무하는 군인들이다.
화려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근무를 서고 있지만 옥상을 이탈할 수 없다. 그들은 대한민국 남성이다. 서울 땅 밑에는 ‘지하공동구’방어를 맡고 있는 일명 두더지 부대가 있다. 이 ‘지하공동구는 배전선로와 유선방송케이블, 초고속정보통신망, 상수도관, 난방용 온수관 등 각종 생활에 관련된 주요공급시설이 한꺼번에 몰려 지나다니는 구조물을 말한다.
지하공동구는 통신, 금융, 주거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도시의 중추신경이기에 전시에 적들의 주요타격목표가 된다. 따라서 일명, ‘두더지부대’라 불리는 젊은 군인들이 서울시내의 땅 밑을 지킨다. 땅위의 시민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땅밑, 어둡고 좁은 통로를 숨죽인 두더지처럼 그들은 그렇게 지키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남성이다.
과연, 한손엔 '테이크아웃Take Out‘ 커피를 들고 하이힐을 신고 맵시를 뽐내며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머리 위 고층건물의 옥상에도, 땅 밑에도 자신들과 같은 연령대의 젊은 군인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수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한국여성들이 선망해마지 않는 뉴요커의 삶이 그들의 조국, 미국의 세계 최강의 국방력 때문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모를 것이다. 한국여자들은.
한국에서는 생물학적인 남성만 군 입대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고학력의 건강한 남성들을 애완견 사료 값도 안 되는 비용으로 2년간 착취를 하고 있다. 착취라는 표현은 이제 더 이상 건강한 남성으로서 가족을 지키고 국가를 수호한다는 신성한 자긍심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하다.
착취당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정책적인 배려가 전무한 상황에서 사회인식마저 군입대를 거부하는 사람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고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비양심적 입대자’인 것이다. 군대에 대한, 국방에 대한 경시 나아가 폄하의 인식은 전적으로 한국페미니스트들의 업적이다. ‘군대는 폭력이다’ ‘군인은 집지키는 개’라는 망발은 페미니스트들이 국방과 남성들의 의무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말해준다.
군대조직이 마땅히 가져야할 폭력성을 제어할 수 없는 야만성으로만 보는 시각, 따라서 없어져야할 존재로 보는 관점이다. 없어져야할 쓸데없는 일에 젊음을 바치는 남성들을 존중해주겠는가? ‘군인은 집지키는 개’라는 말은 사실 ‘플라톤Plato’이 한말이다. 그러나 국가를 수호하는 병사들의 민첩성과 충성심을 ‘개犬’에 비유한 플라톤의 말과 달리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개는 말 그대로 개다.
단순하고 의미 없는 일에 밥이나 축내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게다가 ‘고작 땅덩어리나 지키면서 무슨 할 일을 하느냐?’라는 페미니스트들의 발언들을 보면(국가의 구성요소가 영토 아니던가? 영토, 주권, 국민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영토를 수호하는 것이 주권, 국민을 수호하는 것이고 주권을 수호하는 것이 영토, 국민을 수호하는 것이다)이들에게 정상적인 국가관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당연한 얘기겠지만)그런 맥락으로 남성들의 병역의무에 대해 상징적인 보상, 당신들의 노고를 국가가 감사한다는 그야말로 상징적 보상이었던 ‘가산점제’는 1999년 ‘여성민우회’가 주축이 되어 이화여대생들이 원고가 된 위헌심판에서 위헌결정으로 폐지가 된다.
그로부터 10년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청춘을 바쳐 희생한 대가가 오히려 천대받는 ‘군바리’가 된 것이다. 군 가산점제는 전체 예비역남성들에게 극히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제도이지만 국가가 남성들의 희생을 인식하고 있다는 상징으로서 중요한 것이었다. 폐지된 군가산점제 대신 새로운 보상에 대해 협의하는 과정만으로 10여년을 흘려보냈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제시하는 보상은 그자체가 본질을 망각하고 있는 경우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가산점제 대신 현실적인 보상안, 장학금혜택, 연금 지원 등을 제시하지만(이 역시도 터무니없는 액수이다)이런 방안 자체가 여성들(미필자)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자, 한번 생각을 해보자. 현재 있는 세금의 재원, ‘세원稅源’에서 병역의무를 필한 남성들을 보상한다고 하면 결국 병역의무를 하는 남성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어차피 나갈 돈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현실적인 보상, 돈으로 보상을 한다면 병역을 미필한 사람들이 세금을 따로 내서 마련한 세원에서 보상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미필자들이 따로 세금을 내지 않는 상태에서 보상 운운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만이다.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가지 않더라도 남성들이 가산점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희생에 대한 상징이고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가산점제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과 여성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첫째 ‘병역의무에 대한 보상은 평등권 침해이다.’ 그러니까 병역의무를 수행한 남성들에게 가산점제를 실시해주는 것이 미필자들에 대한 불평등이란 얘기다.
대한민국 헌법 39조
①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②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남성들에 대한 보상을 평등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 의무 이행에 대한 해석을 왜곡하고 있다. 헌법에는 분명 모든 국민들은 병역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하위법인 병역법에서 여성은 지원자에 한하고 남성들 중에서도 면제 대상자를 정하고 있다. 즉 국민의 의무를 타고난 성별로 원천적으로 면제한 것이 아니라 남성병역의무대상자 중에서도 조건 미달자가 면제 되는 것처럼 의무를 이행하기에 조건이 부합하지 않으므로 면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조건이 미달된 자들의 몫까지 조건을 충족하여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남성들이 대신 떠안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원천적으로 면제된 병역의무를 남성들만이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몫까지 떠안고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둘째 ‘여자들은 임신하고 출산을 한다. 출산의 고통을 남성들이 아는가.’참 유치한 이유이지만 대다수 여성들이 직접적인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임신, 출산은 인간의 행복추구 권리이다. 권리는 선택의 자유가 있으나 병역의무는 국가공동체를 유지하기위해 헌법에 명시된 필수적인 의무이다.
사회적 의무와 출산을 맞대응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굳이 비교를 한다면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세계9위지만 출산율은 세계 꼴찌이다. 이 출산율을 거론하면 페미니스트들은 반드시 ‘출산율이 여자 혼자 책임인가’라고 말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을 반복할 것이다. 또 출산을 사회적 의무와 맞대응을 하면 한국여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열등하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남성들과 똑같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이스라엘 여성들의 출산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 당시 전사戰史에 유일하게 48만명의 여군이 남성들과 똑같이 전투병, 저격수, 전투기조종사 등으로 참전했던 구소련.CIS국가 여성들의 출산율이 한국 여성의 2배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셋째 ‘군가산점을 주면 출산가산점도 주어야한다.’ 출산 가산점을 주려면 먼저 헌법에 출산이 의무로 명시되어야한다. 게다가 여성의 권리, 출산에 대한 가치가 출산율을 높인다면 한국은 이미 출산율 세계 1위여야 한다.
넷째 ‘군가산점제는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이다.’ 공무원, 공기업에 응시하는 몇 안되는 장애인들로 전체 여성들의 방패막이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장애인특별전형으로 장애인들끼리 경쟁한다.
즉, 일반 응시자들과는 경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또 만분지일의 확률로 장애인이 군가산점제 적용으로 인해 불리한 경우를 당한다면 장애인만큼은 특별히 구제해도 아무런 불만이 없을 만큼 이 사회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이 성숙되어있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군가산점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섯째 ‘자발적으로 입대한 남자들 어디 있나, 다들 억지로 끌려갔지.’ 어이없지만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가 있다. 자발적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한 것도 아니고 억지로 했으니 가산점(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나? 이런 식의 취지다. 이런 경우는 헌법에 명시된 의무에 대한 개념자체를 이해 못하는 무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의무는 억지로 이행하던 자발적으로 하던 이행하면 그것으로 다 ‘등가치等價値’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세금 내고 싶어 죽겠다면서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도덕적으로 심정적으로 100% 동기부여가 되는 문제라면 헌법에 굳이 의무로 명시할 이유가 없다. 의무는 이행여부의 결과를 중시할 뿐 과정의 자발, 비자발적 여부가 결과의 정당성을 좌우 하지는 않는다.
여성들이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 자체도 남성들의 남성성.자존심을 자극시키려는 행위일뿐이다. ‘남자가 되서 억지로 끌려가서 마지못해서 했으면서 뭘 보상을 바라는가?’라는 속내가 있는 것이다.
여섯째 ‘요즘 군대 편하고 맨날 놀기만 한다던데 하는 일 뭐있나?’ 대한민국에 매일 강력사건이 발생하고 응급환자가 속출하며 사건 사고가 터진다면 시도 때도 없이 경찰차,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닐 것이다.
그럼 국민들이 경찰,119대원들 열심히 일한다고들 하겠지. 마찬가지다. 군대, 군인들이 매일처럼 국민들이 알 수 있게끔 훈련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수시로 시민들 눈에 띄고 헬기, 전투기들이 도시 상공을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니는 상황이 되면 국민들이 요즘 군인들 할 일 없이 논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쯤 되면 이미 한국은 전시를 대비한 준전쟁상태인것이다.
다시 말해 군대, 군인은 국민들 눈에 있는둥 마는둥 하는 것이 국가가 가장 평화로운 상태이며 군대가 가장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보험을 가입하면서 보험의 혜택을 가장 최고로 본 사람이 누구냐 하면 평생 보험 혜택을 받을 일이 없었던 사람이다. 군대는 보험과 같은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해야하지만 평생 쓸 일이 없어야 하는 보험처럼 국민들 눈에 아무 할 일 없이 노는 것처럼 보이는 군대가 가장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병제를 해야 한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의 단골 메뉴인데, 밀린 ‘월급’이나 해결해주고 ‘해고’ 운운해야한다. 현재 보상이 이루어져야할 문제와 모병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2020년 국방계획까지 필요한 병력은 50만이다. 현재 69만여명에서 불과 19만을 감축하는 것인데 모병제로 전환해서 50만을 메울 수 있는 재원은 여성들이 병역세를 낼 것인가?
현재 징병제하의 남성들에게 현실적인 보상을 해주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지금 이 열악한 군대 여건하에서 50만을 어떻게 모병으로 채운단 말인가. 군가산점제와 남성들 병역의무에 대한 현실보상을 회피하기위해 늘 상 내세우는 페미니스트들의 연막전술이고 본질 자체를 흐리는 작태일 뿐이다.
모병제는 이루어져야하지만 지금 현재 병역에 대한 사회, 국가적인 인식부터 필수적이고 신성한 국방이라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모병제는 영원한 공수표에 불과하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미필자들에 대한 병역세를 선택할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유일하고 최선의 방법은 병역의무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하는 남성들이 시간 손실만큼 보상해주는 현실적인 가산점제를 오히려 확대해야한다.
그렇지 못할 때엔 보상 운운하는 차원이 굶어죽어 가는 사람의 입술에 밥알 하나 붙여 주고 ‘견딜 만하지?’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의무를 행한 사람들에 대한 당연한 보상을 의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니 못주니‘ 하는 이기적인 담론은 한국에서만 가능하다. 1999년 군가산점제 폐지될 때 외국 여기자 쓴 칼럼에서 ‘자기 나라 남자들 같았으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동요가 없는 한국남성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할만 큼 한국남성들은 참고 또 참았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뒤로 돌아서 여성부로 돌격 하겠다‘ 군복무를 하는 남성들의 뼈있는 농담처럼 이젠 끓어오르고 있다.
10여 년 동안 끓었으니 이제 넘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감당해보라.
남성연대 상임대표 성 재 기
출처 : http://www.manofkorea.com/bbs/board.php?bo_table=sisa&wr_id=1235
화려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근무를 서고 있지만 옥상을 이탈할 수 없다. 그들은 대한민국 남성이다. 서울 땅 밑에는 ‘지하공동구’방어를 맡고 있는 일명 두더지 부대가 있다. 이 ‘지하공동구는 배전선로와 유선방송케이블, 초고속정보통신망, 상수도관, 난방용 온수관 등 각종 생활에 관련된 주요공급시설이 한꺼번에 몰려 지나다니는 구조물을 말한다.
지하공동구는 통신, 금융, 주거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도시의 중추신경이기에 전시에 적들의 주요타격목표가 된다. 따라서 일명, ‘두더지부대’라 불리는 젊은 군인들이 서울시내의 땅 밑을 지킨다. 땅위의 시민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땅밑, 어둡고 좁은 통로를 숨죽인 두더지처럼 그들은 그렇게 지키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남성이다.
과연, 한손엔 '테이크아웃Take Out‘ 커피를 들고 하이힐을 신고 맵시를 뽐내며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머리 위 고층건물의 옥상에도, 땅 밑에도 자신들과 같은 연령대의 젊은 군인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수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한국여성들이 선망해마지 않는 뉴요커의 삶이 그들의 조국, 미국의 세계 최강의 국방력 때문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모를 것이다. 한국여자들은.
한국에서는 생물학적인 남성만 군 입대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고학력의 건강한 남성들을 애완견 사료 값도 안 되는 비용으로 2년간 착취를 하고 있다. 착취라는 표현은 이제 더 이상 건강한 남성으로서 가족을 지키고 국가를 수호한다는 신성한 자긍심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하다.
착취당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정책적인 배려가 전무한 상황에서 사회인식마저 군입대를 거부하는 사람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고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비양심적 입대자’인 것이다. 군대에 대한, 국방에 대한 경시 나아가 폄하의 인식은 전적으로 한국페미니스트들의 업적이다. ‘군대는 폭력이다’ ‘군인은 집지키는 개’라는 망발은 페미니스트들이 국방과 남성들의 의무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말해준다.
군대조직이 마땅히 가져야할 폭력성을 제어할 수 없는 야만성으로만 보는 시각, 따라서 없어져야할 존재로 보는 관점이다. 없어져야할 쓸데없는 일에 젊음을 바치는 남성들을 존중해주겠는가? ‘군인은 집지키는 개’라는 말은 사실 ‘플라톤Plato’이 한말이다. 그러나 국가를 수호하는 병사들의 민첩성과 충성심을 ‘개犬’에 비유한 플라톤의 말과 달리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개는 말 그대로 개다.
단순하고 의미 없는 일에 밥이나 축내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게다가 ‘고작 땅덩어리나 지키면서 무슨 할 일을 하느냐?’라는 페미니스트들의 발언들을 보면(국가의 구성요소가 영토 아니던가? 영토, 주권, 국민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영토를 수호하는 것이 주권, 국민을 수호하는 것이고 주권을 수호하는 것이 영토, 국민을 수호하는 것이다)이들에게 정상적인 국가관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당연한 얘기겠지만)그런 맥락으로 남성들의 병역의무에 대해 상징적인 보상, 당신들의 노고를 국가가 감사한다는 그야말로 상징적 보상이었던 ‘가산점제’는 1999년 ‘여성민우회’가 주축이 되어 이화여대생들이 원고가 된 위헌심판에서 위헌결정으로 폐지가 된다.
그로부터 10년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청춘을 바쳐 희생한 대가가 오히려 천대받는 ‘군바리’가 된 것이다. 군 가산점제는 전체 예비역남성들에게 극히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제도이지만 국가가 남성들의 희생을 인식하고 있다는 상징으로서 중요한 것이었다. 폐지된 군가산점제 대신 새로운 보상에 대해 협의하는 과정만으로 10여년을 흘려보냈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제시하는 보상은 그자체가 본질을 망각하고 있는 경우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가산점제 대신 현실적인 보상안, 장학금혜택, 연금 지원 등을 제시하지만(이 역시도 터무니없는 액수이다)이런 방안 자체가 여성들(미필자)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자, 한번 생각을 해보자. 현재 있는 세금의 재원, ‘세원稅源’에서 병역의무를 필한 남성들을 보상한다고 하면 결국 병역의무를 하는 남성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어차피 나갈 돈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현실적인 보상, 돈으로 보상을 한다면 병역을 미필한 사람들이 세금을 따로 내서 마련한 세원에서 보상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미필자들이 따로 세금을 내지 않는 상태에서 보상 운운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만이다.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가지 않더라도 남성들이 가산점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희생에 대한 상징이고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가산점제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과 여성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첫째 ‘병역의무에 대한 보상은 평등권 침해이다.’ 그러니까 병역의무를 수행한 남성들에게 가산점제를 실시해주는 것이 미필자들에 대한 불평등이란 얘기다.
대한민국 헌법 39조
①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②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남성들에 대한 보상을 평등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 의무 이행에 대한 해석을 왜곡하고 있다. 헌법에는 분명 모든 국민들은 병역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하위법인 병역법에서 여성은 지원자에 한하고 남성들 중에서도 면제 대상자를 정하고 있다. 즉 국민의 의무를 타고난 성별로 원천적으로 면제한 것이 아니라 남성병역의무대상자 중에서도 조건 미달자가 면제 되는 것처럼 의무를 이행하기에 조건이 부합하지 않으므로 면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조건이 미달된 자들의 몫까지 조건을 충족하여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남성들이 대신 떠안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원천적으로 면제된 병역의무를 남성들만이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몫까지 떠안고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둘째 ‘여자들은 임신하고 출산을 한다. 출산의 고통을 남성들이 아는가.’참 유치한 이유이지만 대다수 여성들이 직접적인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임신, 출산은 인간의 행복추구 권리이다. 권리는 선택의 자유가 있으나 병역의무는 국가공동체를 유지하기위해 헌법에 명시된 필수적인 의무이다.
사회적 의무와 출산을 맞대응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굳이 비교를 한다면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세계9위지만 출산율은 세계 꼴찌이다. 이 출산율을 거론하면 페미니스트들은 반드시 ‘출산율이 여자 혼자 책임인가’라고 말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을 반복할 것이다. 또 출산을 사회적 의무와 맞대응을 하면 한국여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열등하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남성들과 똑같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이스라엘 여성들의 출산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 당시 전사戰史에 유일하게 48만명의 여군이 남성들과 똑같이 전투병, 저격수, 전투기조종사 등으로 참전했던 구소련.CIS국가 여성들의 출산율이 한국 여성의 2배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셋째 ‘군가산점을 주면 출산가산점도 주어야한다.’ 출산 가산점을 주려면 먼저 헌법에 출산이 의무로 명시되어야한다. 게다가 여성의 권리, 출산에 대한 가치가 출산율을 높인다면 한국은 이미 출산율 세계 1위여야 한다.
넷째 ‘군가산점제는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이다.’ 공무원, 공기업에 응시하는 몇 안되는 장애인들로 전체 여성들의 방패막이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장애인특별전형으로 장애인들끼리 경쟁한다.
즉, 일반 응시자들과는 경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또 만분지일의 확률로 장애인이 군가산점제 적용으로 인해 불리한 경우를 당한다면 장애인만큼은 특별히 구제해도 아무런 불만이 없을 만큼 이 사회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이 성숙되어있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군가산점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섯째 ‘자발적으로 입대한 남자들 어디 있나, 다들 억지로 끌려갔지.’ 어이없지만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가 있다. 자발적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한 것도 아니고 억지로 했으니 가산점(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나? 이런 식의 취지다. 이런 경우는 헌법에 명시된 의무에 대한 개념자체를 이해 못하는 무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의무는 억지로 이행하던 자발적으로 하던 이행하면 그것으로 다 ‘등가치等價値’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세금 내고 싶어 죽겠다면서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도덕적으로 심정적으로 100% 동기부여가 되는 문제라면 헌법에 굳이 의무로 명시할 이유가 없다. 의무는 이행여부의 결과를 중시할 뿐 과정의 자발, 비자발적 여부가 결과의 정당성을 좌우 하지는 않는다.
여성들이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 자체도 남성들의 남성성.자존심을 자극시키려는 행위일뿐이다. ‘남자가 되서 억지로 끌려가서 마지못해서 했으면서 뭘 보상을 바라는가?’라는 속내가 있는 것이다.
여섯째 ‘요즘 군대 편하고 맨날 놀기만 한다던데 하는 일 뭐있나?’ 대한민국에 매일 강력사건이 발생하고 응급환자가 속출하며 사건 사고가 터진다면 시도 때도 없이 경찰차,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닐 것이다.
그럼 국민들이 경찰,119대원들 열심히 일한다고들 하겠지. 마찬가지다. 군대, 군인들이 매일처럼 국민들이 알 수 있게끔 훈련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수시로 시민들 눈에 띄고 헬기, 전투기들이 도시 상공을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니는 상황이 되면 국민들이 요즘 군인들 할 일 없이 논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쯤 되면 이미 한국은 전시를 대비한 준전쟁상태인것이다.
다시 말해 군대, 군인은 국민들 눈에 있는둥 마는둥 하는 것이 국가가 가장 평화로운 상태이며 군대가 가장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보험을 가입하면서 보험의 혜택을 가장 최고로 본 사람이 누구냐 하면 평생 보험 혜택을 받을 일이 없었던 사람이다. 군대는 보험과 같은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해야하지만 평생 쓸 일이 없어야 하는 보험처럼 국민들 눈에 아무 할 일 없이 노는 것처럼 보이는 군대가 가장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병제를 해야 한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의 단골 메뉴인데, 밀린 ‘월급’이나 해결해주고 ‘해고’ 운운해야한다. 현재 보상이 이루어져야할 문제와 모병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2020년 국방계획까지 필요한 병력은 50만이다. 현재 69만여명에서 불과 19만을 감축하는 것인데 모병제로 전환해서 50만을 메울 수 있는 재원은 여성들이 병역세를 낼 것인가?
현재 징병제하의 남성들에게 현실적인 보상을 해주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지금 이 열악한 군대 여건하에서 50만을 어떻게 모병으로 채운단 말인가. 군가산점제와 남성들 병역의무에 대한 현실보상을 회피하기위해 늘 상 내세우는 페미니스트들의 연막전술이고 본질 자체를 흐리는 작태일 뿐이다.
모병제는 이루어져야하지만 지금 현재 병역에 대한 사회, 국가적인 인식부터 필수적이고 신성한 국방이라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모병제는 영원한 공수표에 불과하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미필자들에 대한 병역세를 선택할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유일하고 최선의 방법은 병역의무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하는 남성들이 시간 손실만큼 보상해주는 현실적인 가산점제를 오히려 확대해야한다.
그렇지 못할 때엔 보상 운운하는 차원이 굶어죽어 가는 사람의 입술에 밥알 하나 붙여 주고 ‘견딜 만하지?’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의무를 행한 사람들에 대한 당연한 보상을 의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니 못주니‘ 하는 이기적인 담론은 한국에서만 가능하다. 1999년 군가산점제 폐지될 때 외국 여기자 쓴 칼럼에서 ‘자기 나라 남자들 같았으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동요가 없는 한국남성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할만 큼 한국남성들은 참고 또 참았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뒤로 돌아서 여성부로 돌격 하겠다‘ 군복무를 하는 남성들의 뼈있는 농담처럼 이젠 끓어오르고 있다.
10여 년 동안 끓었으니 이제 넘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감당해보라.
남성연대 상임대표 성 재 기
출처 : http://www.manofkorea.com/bbs/board.php?bo_table=sisa&wr_id=1235